설립자 가족
한국에서의 생명사랑 100년, 맥켄지家의 사람들을 소개합니다.
아버지
매견시 목사 Rev. James Noble Mackenzie(1865 ~1956)
1910년 2월, 한국 선교사로 파송되어 메리 켈리 전도사와 1912년에 결혼, 슬하에 헬렌 (매혜란), 캐서린 (매혜영), 루시, 실라의 네 딸과 아들 짐을 두었다. 매목사는 지금은 한센병 환자들에게 많은 관심을 베풀었으며, 상애원을 만들어 환자들의 사망률도 25%에서 2%로 감소시켰다. 1938년 호주로 귀국. 92세 되시던 해 1956년 7월 2일 운명하셨다.
어머니
메리 제인 맥켄지(켈리) 선교사
Mrs. Mary Jane Mackenzie(nee Kelly)(1880 ~ 1964)
메리 켈리 (Mary Kelly) 여사는 1905년 10월 26일 부산에 도착, 매견시 목사와 1912년 2월 10일 결혼, 5명의 자녀를 낳아 기르는 일 외에도 한국말 성경을 가르치고, 한국 사모들 교육, 유아 복지, 어렵고 문제있는 수많은 여성들을 돕고 상담을 해주기도 하였다.
설립자
매혜란 원장 Dr. Helen P. Mackenzie(1913 ~2009)
1913년 10월 6일 한국 부산에서 매견시 목사 부부 장녀로 출생했다. 1931년 평양 외국인고등학교를 졸업하고 호주로 귀국했다.
1933년에서 1938년까지 호주 멜본대학교 의과대학을 졸업하고 퀸빅토리아 병원에서 수련을 받아 산부인과 의사가 되었다. 전쟁으로 한국선교사로 오는 길이 막혀 1946년에서 1950년까지 중국 진슈이에서 의료선교사로 봉직 후 1952년 2월에 한국 부산으로 오게 되었다. 1952년 9월 17일 동생과 함께 부산 촤천동에 호주선교사로 일신부인병원을 세우고 그리스도의 정신으로 환자를 돌보았다. 병원 창립 20주년이 되는 1972년에 한국인 의사에게 병원장직을 이양했다. 1973년 11월 11일 부산진교회에서 명예권사로 임직했다.
1974년 안식년에 일신부인병원 현황을 영상으로 담은 "New Everyday" 영상물로 호주 전역을 일주하며 기금을 모아 "맥켄지 파운데이션"을 조성하여 그 이자로 일신병원이 계속하여 무료환자 진료를 할 수 있도록 했다. 그 후 1976년 호주로 귀국했다.
그는 이제까지의 모든 공로가 인정되어 'Honorary Fellowship of the Royal Australian and New Zealand College Obstetricians and Gynaecologists'를 수여받았다.
2002년 교통사고로 뇌 수술을 받고, 회복은 되었으나 후유증으로 영육이 쇠약하여 요양원에서 지내다 2009년 9월 18일 큐(Kew)에 있는 카라나(Karana)양로원에서 향년 96세를 일기로 소천했다.
2012년 4월 6일 우리나라 모자보건과 국민건강증진에 기여한 공적이 인정되어 내·외국인으로서 최고의 영예인 국민훈장 '무궁화장'을 추서했다. 그는 없지만 우리 한국 여인들과 아이들에게 전했던 그리스도의 사랑은 우리 가슴 속에 영원히 살아 숨 쉴 것이다.
매혜영 선생 Miss Catherine Mackenzie(1915 ~ 2005)
1915년 11월 21일 부산에서 맥켄지 목사 부부의 둘째딸로 출생하였다.
1930년에서 1933년까지 멜본 장로교 여자고등학교를 졸업하고 국가고시에 합격하였다. 1933년 부터 1937년까지 로얄멜본병원 간호학교를 졸업하면서 당해 호주 간호원 국가고시에 합격했다. 1939년 호주 조산원 국가고시에 합격했고 1940년에서 1944년에는 퀸 빅토리아 병원과 로얄 빅토리아 병원에 간호 교수과를 수료하여 간호교수 자격을 취득했다.
1946년에서 1950년까지 언니 매혜란원장과 함께 중국 진슈이에서 선교사로 봉직했다. 1952년 9월 17일 언니 매혜란원장과 함께 일신병원을 설립했다. 당시 한국은 6.25 동란으로 보건사업, 특히 모자보건이 절실하여 1953년부터 바로 간호사들에세 조산사 양성교육을 시작하여 무의촌 지역으로 배출하고, 매해 지역사회 동문들을 방문하여 교육과 격려를 했다. 캐서린은 엄격하게 교육했고, 산모에게도 산전진찰의 중요성을 강조하며 계몽하는 등 우리나라 산전진찰을 정착시킨 큰 공헌자라 할 수 있다. 교회 봉사에도 힘을 써 1977년 12월 11일 부산진교회 명예권사로 임직했다.
1962년 1월 여성과 아기에게 베푼 공로가 인정되어 대영제국 유공자에게 주는 상을 언니 헬렌과 함께 수상했다. 1975년 5월 12일 그의 봉사와 희생이 인정되어 외국인으로서 처음으로 한국에서 나이팅게일기장을 수상했다. 한국어로 된 간호조산학 교과서가 없어서 한국어 교재를 출판하기 위해 수년간 준비했다. 1978년 12월 호주 귀국 바로 전에 매혜영(Miss Catherine Mackenzie) 저 제1판 '간호조산학' 책을 출판했다. 이 교재는 실기 중심으로 만들어진 책으로 전국 조산교육 기관에 큰 도움을 주었다. 그는 1975년 12월 27일 호주로 귀국하기까지 26년 10개월 동안 병원 일에 봉사하며 조산학을 전공한 간호원으로서 한국의 여성들을 위하여, 특히 전국 무의촌 지역사회를 위하여 많은 공헌을 했다. 귀국 후에도 간호조산학 제2판을 1990년에 출판했고, 2001년 3월에는 그동안 변화된 내용으로 일신간호부장이 제3판을 출판했다.
호주에서도 계속해서 그는 자원봉사와 교회에 헌신했으며 항상 한국을 그리워하며 추억했다. 2005년 2월 10일 지병으로 소천했다.
그는 이 세상에서 아무런 업적이나 공을 자랑하지 않았지만 그의 장례식에는 그를 사랑하고 존경하는 많은 사람들이 그에게 아낌없는 찬사를 보내며 기렸다.
형제자매
루시 레인 Mrs. Lucy Lane(Nee Mackenzie)(1918 ~ )
루시 맥켄지는 1918년 10월 11일 부산진에서 매견시 목사의 셋째 딸로 태어났다. 평양에 있는 외국인학교에 입학하여 1927년부터 1936년까지 기숙사 생활을 했다. 평양 외국인 학교를 졸업하고 간호사, 조산사, 모자보건 공부를 위하여 호주로 갔다. 1943년 부터 1946년까지 호주공군에서 간호장교로 일했으며 한때는 뉴기니에 배속되어 복무한 적도 있었다. 1947년 의사 죤 레인과 결혼했으며 슬하에는 3남 2녀를 두었다. 그는 호주 장로교회에서 첫 번째로 여자 장로 안수를 받은 사람이다.
제임스 James Arthor Gordon Mackenzie(1921 ~ 1922)
매견시 목사의 아들 제임스는 1921년 3월 2일 부산에서 출생하였으나 2살 되던 해 1922년 12월 27일 디프테리아로 집에서 사망했다.
쉴라 크리스 Mrs. Sheila Krysz(Nee Mackenzie)(1922 ~ )
1922년 12월 20일 부산진에서 태어났다. 멜본에서 간호사로 그리고 조산원으로 훈련. 1950년에는 유럽으로 건너가 1953년에「파리」에서 결혼, 그, 1983년에 남편이 세상을 떠나자 1995년 정년으로 퇴직할 때까지 어린이를 돌보는 간호사로 일하였다.